제1차 세계대전 중 전쟁 상황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였습니다. 독일 사회는 위기를 맞습니다. 독일군과 정부는 조국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국민 총궐기를 도모합니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설득해서 참전을 독려합니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제1차 세계대전의 전황이 알려집니다. 고등학생이었던 19세 소년 파울 보이머는 학교에서 전쟁 소식을 알리는 담임 칸토레크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참전을 결심합니다.
파울 보이머는 클라스메이트인 크로프, 뮐러, 켄메리히 등과 함께 입대하는데, 그들은 모두 칸토레크 선생님 강의에 감동을 받아 자원 입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입대하는 같은 반 친구들이 2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나라를 구하는 큰마음으로 입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법에서 정하는 일반 징집 나이보다 몇 개월 빠른 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합니다.
파울과 그의 친구들은 10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서부전선 전방에 배치를 받습니다. 어린 병사들은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전투를 경험합니다. 격렬한 전투로 파울의 친구들이 하나 둘 전사를 합니다. 전장의 잔혹함 때문에 친구들의 죽음을 힘들어합니다. 죽음으로 둘러싸인 전장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이 무감각하게 변해가는 것에 스스로 놀랍니다. 거듭되는 전투들을 치르면서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낍니다.
파울 보이머와 그의 친구들이 현실로 만나는 전쟁은 국민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장군들의 논리나 또 그 논리에 맞추어 살아가는 시민생활의 논리와도 판이한 논리가 지배하는 딴 세상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하고 참전한 나름대로 숭고한 정신은 전쟁터에서 찾아 볼 수도 구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울 보이머를 포함한 어린 군인들은 모든 이상과 신조를 잃고, 오로지 가혹하고 비정하고 부조리한 전쟁터의 현실 속에서 생존의 투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무의미한 생활 속에서도 무의미한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친구들이 차례로 죽습니다. 친구들 시체를 보며 파울 보이머는 정신을 차립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현실직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휴가를 얻어 고향을 방문한 파울 보이머는 기대와는 달리 휴가가 불편합니다. 처음 누나와 어머니를 만나서 뿌듯했지만, 배급제로 인하여 전쟁터보다 못한 식량부족 현상을 보고 가정 형편에 대한 부담도 느낍니다. 또한 암에 걸려 초췌해진 어머니의 모습에서 보이머는 애잔함을 느낍니다. 전쟁의 현실은 자신이 그렸던 그런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동료들의 전사를 목도하면서 전쟁의 고통을 느끼다가 고향에 와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데 고향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전쟁으로부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자신과 동급생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담임선생은 향토 방위대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근무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합니다.
전장에 복귀해서 파울은 어느 날, 교회 근처에서 전투 중에 젊은 프랑스 병사를 죽입니다. 서로 아무런 원한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다만 전쟁의 광란 속에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한 번도 대화한 적도 없고, 한 번도 갈등한 적이 없었는데 전쟁의 시스템에서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사람을 죽인 자산에게 놀랍니다. 파울은 죽은 프랑스 병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 병사의 가족사진을 보고 마음이 더욱 아픕니다.
파울 보이머는 친한 급우였고, 전우인 알베르트와 함께 전장에서 부상을 입어 같이 후방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보이머의 부상은 별문제 없이 치료되었지만, 알베르트는 결국 다리를 절단합니다. 이후 둘은 서먹해집니다. 알베르트는 불구의 몸으로는 살지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파울 보이머는 알베르트에게 말 못 할 미안함이 있습니다. 보이머는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들의 죽음과 자살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파울 보이머는 차라리 전선에 복귀하기를 바랍니다.
1918년 가을의 어느 날에 오랜만에 전투는 소강상태이고 쾌청한 날씨입니다. 병사들은 전쟁 중이라는 것도 잊고 누군가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파울의 눈은 날고 있는 나비를 쫓고 있었습니다. 나비가 평화처럼 생각되어 참호에서 몸을 일으켜 나비에 손을 내미는 순간 적의 저격병이 파울을 저격합니다. 파울은 전사합니다. 파울 보이머가 전사했던 그 날도 전선은 종일 조용했습니다. 사령부에서는 본국에 짧고 명료한 전문을 보냈습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이상은 독일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줄거리입니다. 작가는 18세에 제1차 대전에 참전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썼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이 죽는 날도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상황보고가 이뤄진 것을 강조하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최고의 반전소설이라고 인정받습니다. 이 소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독일에서 만 백만 권 이상이 팔렸고 각국에 번역되어 육백만 부가 팔렸지만 나치 정부는 그를 추방했습니다.
이 소설은 선동으로 자원 입대한 10대 소년의 눈으로 전쟁의 실상을 통렬히 고발합니다. 레마르크가 그리는 전쟁은 숭고한 애국심이나 인류애의 실천 현장이 아닙니다. 맹목적 살상과 처절한 죽음으로 참혹한 현장입니다. 이 소설로 전쟁의 광기가 가득했던 당시 독일사회를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죽어 세상이 끝났는데 ‘서부 전선 이상 없다’고 보고합니다. 소설 제목이 역설입니다. ‘이상 없다!’는 보고를 전한 서부전선은 이상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이상이 없다고 강조되는 곳이 오히려 더 이상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이상이 있습니다. 서부전선(?) 이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