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달력을 한 장 남겨놓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언젠가 교회 장로님 댁에 심방을 갔다. 장로님은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았다. 권사님은 장로님과 결혼해 늘 섬기고 보살피며 살았다. 장로님과 권사님이 살아온 여정을 나누다 권사님이 공책 한 권을 꺼내며 펼쳐 보였다. 공책에 쓰인 단 하나의 단어는 ‘감사’였다. 감사라는 단어를 매일 취침 전에 한 장씩 빼곡하게 적는다는 거였다. 감사할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할 힘이 없을 때 ‘감사’를 노트에 적기로 했단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감사라는 단어를 일정한 간격에 맞춰 한 장을 채우고 취침한다는 거였다. 그런 공책이 몇 상자가 된다면서 엷은 미소를 짓는 권사님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었다.
권사님은 다른 어떤 내용이 아닌 ‘감사’라는 단어만 계속 썼다는 거였다. ‘감사’는 비록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권사님의 눈물과 깊은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몇십 년을 쓰다 보니 매일 감사한 삶이 일상이 되었다는 고백이었다. 감사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감사야말로 진정한 감사가 아닐까. 변하지 않는 현실, 변할 것 같지 않은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권사님의 삶이 얼마나 버겁게 느껴졌을까. 권사님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로님과 결혼해서 평생을 항해한 권사님의 삶을 감히 가늠해 본다. 권사님 삶에 감사의 돛을 달고 모진 폭풍에도 하나님께 감사한 삶이었기에 지금까지 항해할 수 있었으리라.
헬렌 켈러는 “내가 만일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다. “만약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아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겠습니다. 점심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우의 상품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지극히 소소한 일들이 헬렌 켈러에게는 절실한 소망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산소를 호흡하면서도 그 존재 가치를 모르고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가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누군가 에게는 절실한 갈망이 되었다.
한 달 전에 지인의 천국 환송 예배를 드리고 왔다. 소천한 권사님은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닌 이웃교회 성도였다. 어떤 상황에서 기도로 연결된 적이 있어 아는 사이였다. L 권사님은 내가 드린 마지막 기도를 듣고 소천하셨다. 우리 교회 집사님의 부탁을 받고 권사님 집에 방문했는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
10월의 어느 날, 새벽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교회 집사님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 권사님이 투병 중인데 갑자기 악화되어 힘들어한다는 소식이었다. 집사님이 권사님 집을 매일 방문해서 식사를 준비하는데 그날은 급한 일이 있어 갈 수 없다는 거였다. 갑자기 부탁할 사람이 없어 고민하다 내가 떠올라서 나에게 어렵게 부탁을 한다고 했다. L 권사님이 한 끼 드실 죽을 준비해서 문 앞에 놓고 올 수 있냐는 거였다. 어떤 분주한 일이 있어도 권사님 집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재료를 믹서기에 갈아 죽을 준비했다. 죽과 과일, 그 외 부드러운 음료를 준비해서 권사님 집으로 갔다. 집 앞에 도착했는데 마침 권사님의 아드님으로 보이는 청년이 밖에 있었다. 나를 집 안으로 안내해서 들어갔다. 내가 마주한 것은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에 호흡을 의존하고 있는 권사님의 모습이었다. 물론 내가 만들어 간 죽을 드시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내가 준비한 그 죽은 이 땅에서 L 권사님을 위한 마지막 식사였다.
L 권사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날 권사님을 부르실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기도하고 집에 왔는데 한 시간쯤 후에 교회 집사님한테 문자가 왔다. L 권사님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었다. “000 권사님께서 사모님의 기도를 마지막으로 듣고 천국에 입성하셨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내용이었다. 지상에서 마지막 기도를 들으시고 평안한 가운데 영원한 본향 집에 가셨다. 권사님이 의식이 없는 중에도 내 손을 잡고 한 마지막 말은 “감사합니다.”였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감사’였다.
“~때문에” 감사하는 조건적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숙한 성도의 감사가 아닐까.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백이 무엇일까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