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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월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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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수필가] 가버나움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관람한 영화 한 편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의 작품 <가버나움>이다. 이 영화는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디아스포라 난민들의 삶을 조명하고 국제 사회에 알리는 사회고발 영화다. 레바논과 프랑스의 합작인 이 영화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감독으로서 세 번째 작품인 <가버나움>으로는 제72회 영국 아카데미,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와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첫 레바논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주인공 소년 자인 알 라피아와 자인 여동생역을 맡은 하이타 아이잠은 칸 영화제 참석 일주일 전까지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서류가 없어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출생 증명서를 받게 되었다. 나단 라바키 감독과 제작진은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해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바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44년에 독립한 나라다. 정부가 보수세력과 아랍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급진적 이슬람교도의 두 세력의 대립 위에 세워짐으로써 안정을 잃고 혼돈 가운데 있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은 연기를 처음 하는 일반인을 캐스팅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역을 맡은 열두 살 소년 자인은 레바논에서 팔 년 정도 거주했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다. 주인공 자인의 여동생 역을 맡은 하이타 아이잠은 베이루트 거리에서 껌을 팔다 캐스팅되었다. 법정에서 판사 역을 맡은 인물은 영화 제작 당시 실제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재판관 현직 판사다. 자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가버나움의 영화 감독인 나딘 라바키 감독이다. 자인이 가출해서 우연히 만난 라힐은 에디오피아 출신으로 실제로 불법 체류자다. 인물들을 실제 배역에 맞게 캐스팅하고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현실감과 진정성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영화는 ‘본인을 태어나게 한 죄’로 자신의 부모를 고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인의 입을 통해 영화 제작 당시 베이루트 하층민들의 삶이 조명된다. 국제 사회와 주변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의 처절한 악순환의 이야기다. 레바논의 최하층 거주지이며 난민들이 대거 유입된 도시와 난민들과 불법 체류자들의 빈민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는 장면이 전개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고소 원인에 대해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자인의 눈을 통해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감독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자인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장면이 나온다. 열두 살 소년 자인은 생존을 입증할 서류가 하나도 없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법적인 근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자인은 출생신고 서류 한 장 없었지만 이 사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감독은 모든 약자의 목소리를 주인공 자인의 시선을 통해 입증한다.
감독은 영화에서 그 사회 기성 세대에게 부모로서의 무책임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권리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린 자인의 입장에서 마주하는 커다란 성벽 같은 사회 구조와 한 인간으로서의 갈등이 잘 드러난다. 자인이 무엇인가 응시하는 듯한 그 예리한 눈빛은 그동안 자인이 살아오면서 겪은 삶의 모든 애환이 다 녹아있는 듯한 눈빛이다. 그 눈빛은 한 아이, 아니 한 인간이 세상을 향해 응시하는 눈빛이다. 감독은 약자인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 부분을 잘 포착해 내었다. 거리 곳곳에서 방황하는 어린 난민들을 방관하는 어른들과 타인의 아픔을 묵인하는 사회 현상을 고발하는 감독의 의도가 마음에 잔잔하게 남았다.
이 영화가 발표되었던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큰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튀르키예의 지중해 해안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어린아이 쿠르디 사진과 동영상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난민들이 목숨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과 세계 곳곳에 흩어지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는 그들에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 결과,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지중해에 목숨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쿠르디의 사건을 계기로 난민들을 위한 유럽의 문이 낮아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시기적으로 가버나움 영화와 어린 쿠르디의 죽음을 통해 난민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국제 사회를 깨우는 시발점이 되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해 우리 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하나의 주제만을 제시하지 않고 다각도에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의 정체성과 신분이 무엇인가. 영원한 하늘 시민권을 소유한 하늘 백성이 이 땅에 안주할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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