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의 삶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은혜 안에 거할 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한 삶을 살도록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평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은 전통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늘 각을 세우며 대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신 대표적인 표현이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마 23:27). 회칠한 무덤은 무엇이며, 왜 무덤에 회칠해야 했을까요?
회칠한 무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정결 의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그리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은 거룩한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들이기에 스스로 부정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며 생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혹여나 부정해졌다면 그 부정이 제해지고 다시 정해질 때까지 공동체 안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동참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부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부정은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으로부터도 거부당하는 철저한 소외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구분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정하게 하기 위한 매개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것은 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침례 의식의 유대교 원형인 미크베(מקווה) 정결 의식도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물을 사용한 정결 의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 물이 통하지 않는 물질을 부정이 통과하여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이 가로막고 있다면, 아무리 그 바깥에 부정한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파 랍비 유대교의 후예인 오늘날 초정통파 유대인들에게서도 동일한 사상이 발견됩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때,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텔아비브(Tel Aviv) 국제 공항의 활주로 공사 문제로 모든 항공기가 임시 활주로를 통해 이륙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임시 활주로를 통해 이륙하게 되면, 반드시 무덤 위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명한 유대교 랍비가 임시 활주로를 이용하는 동안 텔아비브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부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들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여 출국해야 하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비행기가 이룩하여 무덤 위를 지나갈 동안 자신에게 부정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커다란 비닐봉지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들어가 외부에서 다른 사람이 여며주면 무덤 위를 지나갈 때까지 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이한 현상을 다른 승객들이 사진을 찍어 제보한 것이 뉴스를 통해 보도된 것이었지요.
예수님 시대에 커다란 방수용 비닐이 있었다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이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결함을 지키고, 부정함이 정결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은 회반죽이 유일했습니다. 조개껍질에서 얻게 된 재료를 통해 만들어진 회반죽은 방수의 역할을 잘 해주어 물이 새지 않도록 했기에 주로 물 저장소(cistern)에 사용되었습니다. 욥바와 같은 해안 지역의 도시들에서는 사암을 건축 자재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건물 유지를 위해 사암 위에 회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칠을 해두면 방수가 되기에 사암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회칠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무덤은 부정한 시신이 놓이는 자리입니다.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잘못하여 무덤에 손을 대거나 접촉했을 때, 시신의 부정이 여전히 무덤 안에만 머물 수 있도록 회칠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회칠한 무덤들은 예루살렘 주변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의 제사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혹여라도 무덤 때문에 부정해져서 계획대로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회칠을 해두면 밝은색으로 눈에 잘 띄기까지 하니 그 또한 좋은 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이 속에는 부정한 것을 가득 담고 있으나 겉으로는 부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 회칠해 둔 무덤과 동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내려오신다면, 우리를 향해서는 회칠한 무덤 같지 않다고 칭찬하실까요?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모신 성전과 같은 삶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