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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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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목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최승민 목사
현 플라워마운드 한인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문화(文化)란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소득”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속한 사회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문화가 다른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속한 사회와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는 완연히 다른 사회입니다. 따라서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양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가치가 같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이 선언에 대해서도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의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선언을 들었을 때,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선언은 인간의 모습이 신의 모습과 닮아다는 단순한 정보를 주기 위한 진술이 아닙니다. 이 선언을 진술문으로 잘못 이해하면, 두 손과 두 발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고, 마찬가지로 두 손과 두 발을 가진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인간의 외형이 아니라 내면 구조가 하나님과 닮아다는 이해 역시 같은 맥락의 오해입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배경은 맥락, 즉 문학의 내재적 배경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선언은 어떠한 맥락에서 등장하나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시는지, 혹은 인간이 어떤 하나님의 속성을 가졌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쓰인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엿새에 걸친 창조를 마치시고, 마침내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하십니다. 이전까지 다른 창조물들을 창조하는 과정과는 다르게,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에서 인간을 “우리(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이어지는 인간에게 주시는 모든 명령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것은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인간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창조자이자 주인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간이 대행한다는 의미일까요? 성경의 일차적인 독자였던 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현대와 고대 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교통(交通)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역 간 사람들의 왕래가 오늘날처럼 쉽지않았기 때문에 먼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지역에 있던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대 세계에서는 국가를 지배하는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통치권이 먼 변방 지역까지 강력하게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왕의 통치권이 강력하게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왕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 왕은 얼굴 한번 볼일 없는 인사(人士)에 불과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다른 왕국으로 편입된다고 하더라도 그들로서는 그저 세금을 거두어가는 주체가 바뀌었을 뿐이지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세금을 거두어 가든, 아람의 왕이 세금을 거두어 가든, 한 지역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지요.

반면에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먼 지역까지 분명하게 자신의 통치권을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경 및 목축이 경제의 중심이 되는 고대 사회에서, 통치 지역의 크기는 곧 국가의 경제 규모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통치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왕이 갈릴리 북부 지역의 ‘아벨 벧 마아가’까지 행차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군지를 확실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서 고대 왕의 모습대로 조각된 석상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왕이 행차하지 못하니 왕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석상(石像)이라도 세워서, 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통치하는 왕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왕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석상은 그 지역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석상은 그 지역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통치자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선언은 인간 통치자들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석상을 세움으로 통치 영역을 표시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있는 곳 그 어디나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신학적 선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니 인간이 선 어느 곳이나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통치 영역입니다. 나의 선 자리를 하나님의 통치 영역으로 만들어가는 일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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