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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4월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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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목사] 누가 진정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일까요?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예배를 드릴 때, 때로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감동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은혜의 역사가 자동적으로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배시간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몰려 옵니다. 하지만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내 삶에 은혜가 넘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여전히 교회 문을 나설 때는 이전의 삶과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감동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꿈쩍하지 않는 큰 바위처럼 하나님 앞에 그대로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즉 감동이 은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삶에 변화가, 다시말해 자신의 삶의 현장에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살 난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열두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일로 인해 혈루증 여인의 병이 나음을 받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장당의 집으로 가던 길이 지체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딸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 얼마나 청천 벼락 같은 소식이겠습니까?
‘혈루증 앓던 여인이 도중에 끼워들지만 않았더라면 …,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가 멈추지 않고 계속 길을 갔더라면…,’ 하는 원망과 불평이 절망감과 함께 밀물처럼 회장당 야이로 가슴에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은 마가복음 5장 36절에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회당장은 마음을 추스리고 예수와 함께 계속 길을 갔습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비웃었을 수 있겠지만 회당장 야이로는 정말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딸은 잠에서 일어났습니다. 살았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이 이야기를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끝까지 하면, 즉 ‘믿기만하면 역사는 이루어지는구나…’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 졌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게 된 여인으로부터 눈물의 간증을 듣을 때,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 딸이 살아난 극적인 얘기를 들을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은혜”는 결국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끝까지 예수님을 믿었던 회당장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그 딸 만이 누리게 되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감동은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지만 은혜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만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그 길을 간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기독교는 감동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불같은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믿음의 결단과 행동이 없는 성도에겐 은혜를 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은혜는 그저 감동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차원에서만 머물고 그것이 은혜인 양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오늘 목사님 설교 때문에 너무 은혜 받았어” 하지만 여전히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헌신이나 희생 없이 사람들을 판단하며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순종가운데 행동 하는 자의 것임을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진 사람, 그리고 그렇게 믿음으로 끝까지 동행한 사람……. 진정 감동을 넘어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한 주간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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