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 F
Dallas
목요일, 5월 15, 2025
spot_img

[전창희 교수] “더 글로리, 학교 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전창희 교수
UT 알링턴 영상학과 교수

“내가 당신을 용서 안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 첫 가해자라는 걸 당신은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말은 얼마전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더 글로리” 라는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문동은이 한 대사입니다.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방영된 이 드라마는 공개 후 단 3일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탑10의 비영어 부분에서1위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시 한번 K-미디어의 힘을 보여주며 전 세계 23개 국에서 TV와 영화를 통틀어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학교 폭력과 복수”라는 주제는 다시 한번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폭 (학교 폭력)’이 가지는 그 민감한 상징성에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선한 영향력”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들이 “학폭”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게 했고, 연예인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학폭 경험담과 함께 진상을 규명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한국 사회 고위 공직자 후보의 아들이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후보자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미 시간이 좀 흘렀지만 유망한 프로 야구 선수의 학폭 문제까지 다시 재조명되는 등, 학폭 문제는 다시 한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드라마를 시청할까요? 물론 개인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드라마 시청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대리 만족”을 이야기합니다. 드라마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시청자가 본인의 삶속에서 이루지 못했던 부분들을 주인공에 투영하고, 그 주인공의 성공을 통해 대리적인 만족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포브스(Forbes) 라는 경제 잡지는 “더 글로리”의 성공을 기사화하며 이런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가장 좋은 복수는 직접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글로리” 라는 K 드라마를 보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리 만족”이라는 미디어의 효과는 사실 제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합니다. 이 드라마의 성공 이후 학폭 가해자로 지명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이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렀고, 이에 대해 공정한 처벌과 비난이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울러 학폭 피해자가 오랜 시간 겪어야 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수많은 비난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저는 조심스럽게 한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에게 손가락질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대해 한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이것이 또 다른 “대리 만족”을 위한 비난은 아닌지요? 누군가를 욕하고 경멸하는 집단적 행동의 뒤에는 어쩌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불만과 고통을 분출하기 위한 대리 만족의 욕구가 있지는 않을까… 저 자신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진짜 학폭 가해자 중에는 빈부 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불균형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 그저 방조해 왔던 나 자신의 모습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폭력의 피해를 받고 있음을 알아도 자신의 성공과 안위가 중요해서 그저 고개 돌려 버린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외되어 버린 많은 사람들이나 사회적 문제에는 그저 모른 척 했던 무관심이 숨겨진 학폭의 가해자는 아닐까요?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이야기 해 봅니다. 가해자에게 향하는 손가락 질을 자신에게 먼저 돌려 보았으면 합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게 합니다. 죄를 지은 간음한 여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우리에게 돌리게 합니다.

2022년 학교 폭력의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한 교육부의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의 1.7%가 학폭 피해의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100명의 학생 중 2명 가까이 경험했다는 통계인데, 이 피해 응답률은 2020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학폭의 가해자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이러한 학폭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쳐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해자에게만 향했던 손가락을 돌려 각자의 모습을 먼저 돌아 보는 것이 필요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수많은 화재의 대사를 만들어낸 “더 글로리”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영광도 없겠지만.”

복수의 대리 만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정말 멋진 대사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나의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불편하게 들리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학폭이든 아니면 또 다른 사회의 악이든 간에, 우리의 시선이 먼저 십자가에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글로리”는 그 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