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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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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희 교수]“동백꽃, 떨어지다”

전창희 교수
UT 알링턴 영상학과 교수

겨울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하얀 눈 위로 그 찬란한 붉은 빛으로 피어나는 동백꽃입니다. 대한민국의 남쪽 지역, 특히 제주도를 겨울에 방문하면 이 꽃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속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동백꽃은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오면 땅으로 떨어집니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게 아니라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땅 위에 수많은 동백꽃들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데, 온 대지를 붉은 피로 물든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합니다.
이 동백꽃은 제주 4.3 사건의 상징적인 꽃이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던,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인 비극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휴가를 간 것이 아니라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써 제주 4.3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고자 그 곳에 갔습니다.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사 오던 약 5년 전에 저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이런 서원을 하였습니다. “삶의 지경을 바꾸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텍사스에 있는 동안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 나오는 “팔복”의 말씀으로 영상을 만들겠습니다. 그 영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화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지난 5년간 이를 토대로 5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이번에 “애통하는 자의 복”을 주제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주 4.3은 1947년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일어난 일로 당시 제주도 인구의 3만 여명이 학살당하고 4천여개의 가옥이 불타 사라져버린 사건입니다. 당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과 단독 선거를 반대하던 제주 시민들을 미군정은 “빨갱이”로 규정하고 무참히 짓밟아버린 안타까운 탄압 사건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이 사건속에 생존한 분들과 유가족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아버린 민족의 비극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제주에서 촬영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주 4.3. 평화 재단(https://jeju43peace.or.kr), 제주 다크 투어(https://www.jejudarktours.org/ko/), 참여연대(https://www.peoplepower21.org),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https://www.jinsil.go.kr), 제주 시장 등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분들과 함께 생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인도 하에 만난 모든 분들이 다 소중한 인연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중 한 분인 강춘희 할머니 입니다. 할머니는 4.3이 발생할 당시에 그저 6살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제주도 오라리라는 곳에 위치했던 연미 마을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평범한 농민의 가정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일에 이 평화롭던 마을에 방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주도를 탄압할 명분을 찾고 있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서 우익단체 였던 서북청년단을 시켜 온 마을에 불을 지르고, 미군의 비행기가 하늘에서 이 장면을 촬영해서 “메이데이 제주”라는 영화를 만들어 제주도를 “빨갱이의 섬”으로 규정하는데 홍보 자료로 사용을 합니다. 강춘희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이 마을의 이장이었기에 할머니의 집이 제일 먼저 불타버렸고, 이때 할머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남겨진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땅굴 속에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유복자 아들을 출산하게 되는데, 배고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숨은 장소가 토벌대에게 발각될까봐 염려한 마을 주민들이 요청에 눈 덮인 산을 밤새 걸어 내려와 외할머니 집에 다시 숨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순찰하던 무장대에게 발각되어 어머니와 아기는 감옥에 끌려가 모진 구타를 당했고,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속에 어린 동생을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낸 할머니는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강춘희 할머니는 그렇게 살아남은 어머니와 단 한번도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마음에 애통함이 너무 커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면 눈물만 흐르고 차마 입밖으로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애통하다”는 말로 성경에 기록된 헬라어 “펜테오”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사용하는 극도의 슬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애통함은 정말 말 그대로 “펜테오” 였습니다.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고, 할머니의 고향 마을과 가족들의 묘지를 촬영하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차 안에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예수 믿으시죠?” 그랬더니 할머니는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이렇게 함께 촬영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영상을 만들게 된 계기가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한 성경 말씀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때문에 이 이야기를 그동안 차마 말하기도 힘들었는데, 언젠가 우리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 대상이 예수 믿는 사람이기를 기도 했어요. 오늘 주님이 그 기도에 응답을 하셨네요.” 그러면서 동백꽃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 이 작품의 마지막 편집 과정이 끝났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사실 영상 작업을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 방학 기간 내내 이 작품에 매달려 이제 “동백꽃”으로 이름 붙여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려고 합니다. 할머니의 동백꽃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기도 했습니다. “하얀 눈밭에 통으로 떨어진 그 붉은 꽃이 4.3. 희생자들의 영령이라면, 보혈의 피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그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소서.” 이 작품이 끝나는 순간, 화면에는 제 영화에서는 늘 그랬듯이 성경 구절이 떠 오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혹시 지금 애통함에 괴로워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위로”라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펴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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