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구름으로 떠있을 땐 제법 맑고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구름은 응결 과정을 통해 엉겨 붙게 되면서 비로 전환 되어 내려온다. 지상에서의 부름을 받고 내려온 물은 가뭄을 달래 줄 단비로 우리에게는 반길 만한 존재이지만 물 입장에서는 오염의 여정을 시작하는 셈이다. 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흘러 가며 그 순도를 잃어 가지만 마주치는 모든 것들과 다투지 않고 웬만하면 다독여 품고 간다. 물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낮은 곳에 다다랐을 때 다시 위로 상승하는 순례자다. 물은 더러움을 걸러주며 살아 내야 할 사명이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생기를 가져다 주며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 곁에 물은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자욱한 안개로, 정겨운 소리를 내는 개울이었다가 유유히 흐르는 강으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였다가 산의 높음 보다 깊은 심해수로 존재한다. 물은 빙하로 긴 휴식기를 갖기도 하며 워터파크의 짜릿함을 자아내기도 하며 음악에 맞춰 춤추는 공원의 분수였다가 종종 무지개로 빛의 산란을 담아 낸다. 물은 보일러의 온수로 존재하다가 여름철 아이스 커피로 어느 순간 우리 몸에 스며 들어와 피가 되어 살을 적시고 땀과 눈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 생애도 어머니 자궁 속 양수라는 물에서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물은 자연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했다. 물 자체에 큰 에너지가 있어서 가 아니라 물이 가진 놀라운 속성들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 나서지 않아도 지구내에서 순환함으로 우리를 찾아 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미네랄과 물이다. 우리 피부도 계속해서 표피 조직을 새롭게 하듯이 지구도 지각 변동과 순환을 통해 끊임없이 지표면을 새롭게 한다. 이 때 마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수반되지만 용암은 새로운 암석과 더불어 온갖 미네랄을 내어 놓는데 이를 녹여 나를 수 있는 용매가 물이다. 물은 거의 대부분의 물질을 녹일 수 있고 용질을 안정적으로 보존하는 용매이다. 물의 순환은 지각 순환과 서로 맞물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미네랄을 들고 우리를 직접 찾아 오는 것이다.
물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액체 중에 가장 점성이 낮은 물질 중 하나이다.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면서 점성이 낮은 물은 혈액 순환계에 적합하다. 송유관에서 원유를 이동시킬 때 원유의 점도에 따라 압력을 조절해야만 펌프와 배관이 손상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물의 점성이 조금만 높아도 모세혈관을 통한 산소 공급과 영양분 공급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올리브 오일은 물에 비해 점성이 80배가 높고 꿀은 6800배가 높으며 땅콩버터는 25만배가 높다.
물의 또 다른 신기한 속성 중 하나는 컵에 얼음을 담아 놓고 물을 부었을 때 얼음이 동동 뜬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물질이 고체로 존재 할 때 밀도가 높아 자신의 액체 속에서 가라 앉기 때문에 이것은 진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은 고체일 때 밀도가 오리려 낮아져 액체 위에 뜰 수 있는 몇 안되는 희귀한 물질이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강이나 바다의 물이 얼어도 밑으로 가라 앉지 않고 수면 위에 얼음 층을 형성함으로 보온 효과를 갖게 된다. 얼음이 계속해서 밑으로 가라 앉은 호수와 바다에서 생명을 기대하긴 힘들겠다.
지구도 우리 몸도 일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물의 높은 비열 때문이다. 비열이 높다는 말은 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비교적 많은 열을 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물의 온도를 1도 높이기 위해서는 식용유의 온도를 1도 높이기 위해 가하는 열량의 두배가 필요하다. 바꿔 말하자면 물은 열을 가해도 다른 물질에 비해 온도를 쉽게 올리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는 항온 동물인 우리가 체온을 안정적으로 유지 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물의 속성은 기화열이 높다라는 사실이다. 어떤 물질이 액체 상태에서 증발할 때 주변에서 빼앗아 가는 열을 기화열이라 하는데 물은 기화열이 가장 높은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인간은 대사 활동으로 달아 오른 체온을 효율적으로 식히기 위해 물을 땀의 형태로 분비한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자나 개처럼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물은 모든 식물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전자를 내어 준다. 광합성의 원리는 식물이 햇빛 에너지를 사용하여 물분자를 쪼개고 전자를 뽑아 그것을 높은 에너지 준위의 전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만약 물이 전자를 내어 주지 않는다면 광합성도 없고 이에 의존하는 생명들도 없게 되는 것이다. 물은 전자를 주고 나면 곧 산소가 된다. 산소는 식물 입장에서는 폐기처분해야 할 물질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겐 더 없이 소중한 호흡의 목적이 된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가장 힘센 존재가 될 것이 아니라 좋은 속성의 존재가 되어야 함을 물을 통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