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은 잘못한 담보와 보증만이 아닙니다. 6-11절의 단락에서는 ‘게으름’이 경제 파탄의 원인이라고 경책(警責)하고 있습니다.
본 절의 주제는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특히 다른 피조물보다 지혜롭게 창조함을 받았습니다(욥35:11). 영적 세계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慧眼)까지 가지고 있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롬1:21-22)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졌다’. ‘지혜가 어리석어졌다’는 것은 영적 세계를 보는 영안(靈眼)이 닫혀졌으며, 자연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혜안(慧眼)이 어두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와 같은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로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몰려오면 동물들은 몸을 피신하는데 미련하고 멍청한 인간들만이 그 광경을 구경하겠다고 나아가서 몰살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에게서 다시 배워 지혜를 얻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있는 지혜를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배울 수만 있다면 미물에게라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개미, 아주 작은 미물(微物)의 곤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네임 벨류(name value)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다나엘처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고 말하면서 무시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빈 깡통이 괜히 건방 떨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는 일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작은 자, 보잘 것 없는 자에게라도 찾아가야만 합니다.
둘째는, 그들의 삶의 특징 중에서 배울만한 것들을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힐긋 보고 미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기 위해서 찾아갔으면 세밀하게 집중적으로 낱낱이 살피고 관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한두 번 만나보고 강의를 들은 후에는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특징, 그의 가르침의 핵심, 그 안에 숨겨진 진리의 오묘한 것들을 발견할 때까지는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그들에게서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개미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비록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미물의 곤충이지만 그들에게는 협동성, 근면성, 예비성이라는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의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그 작은 곤충에게서 훌륭한 지혜를 배워 내 것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건방 떨지 말고 작은 개미를 찾아가서라도 배우고 또 배우는 자세를 갖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