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6:29)
캐리 채프맨(Gary Chapman)은 『5개의 사랑의 언어』에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언어와 함께 신체적, 정서적 터치(touch)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정서 탱크’가 있어서 그곳에 사랑이 채워지면 안정한 심령과 건강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체적인 접촉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교감이 포함 된 스킨십(skinship)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손을 잡아주거나 쓰다듬어주거나 토닥거려주거나 부드러운 접촉을 하거나 따뜻한 포옹을 하면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아동보호소를 운영하던 분이 아이들의 성장이 빈약한 모습을 보면서 고민하다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곳의 한 유아원의 아이들을 보니, 시설도 형편없고, 영양 공급도 열악했는데 아이들이 건강하게 우량아처럼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환경적 조건은 열악하였지만 그곳의 아이들이 건강한 것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교대로 와서 안아주고 놀아주는 시간을 갖는 신체적 접촉시간을 가진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이들의 건강에는 얼마나 좋은 환경이냐, 얼마나 좋은 영양을 공급 받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터치, 사랑의 접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터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만져서 병을 치료해 주기도 하셨고(마8:2), 사람들로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혈류병 걸린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터치하는 순간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흘러 들어가서 병이 근원부터 치료되는 기적을 경험했던 것입니다(막5:29-30).
믿음의 접촉, 사랑의 손길, 긍휼의 터치는 놀라운 치료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덕을 세우는 일”(롬14:19, 15:2, 살전5:11), 즉 상대방을 세워주는 사역(build ministry)을 감당해야 할 사명자입니다. 약한 자를 붙잡아주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주며, 상처받은 자를 싸매주고, 우는 자를 품어주며, 더디가는 자를 손잡아 이끌어주면서 승리하는 인생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만 할 사명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터치를 해야 하는데 음심(淫心)의 터치를 한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느 순간 사탄의 유혹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음심이 가득한 손으로 접촉을 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세우는 사역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항상 부어주시는 은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롬5:5).
“주님, 나로 여인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를 대하듯, 사랑하는 자매를 대하듯, 그리스도 안에 형제를 대하듯 하게 하옵소서. 음심이 틈 못 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