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온라인 유튜브 방송설교, 영상예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인터넷 교회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뿐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고 참된 교회론을 무너뜨리는 지나친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당시의 현실적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동안의 성경적인 가르침을 몽땅 부정하는 듯한 현실론적 접근에 대해 상당히 의아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인터넷 교회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잠시 현장예배가 어려워진 틈을 타, 임시적이고 제한적인 특별한 상황에 맞춘 영상예배에 무언가 대단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처럼 여기며,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아주 과유불급(過猶不及)한 일이 분명합니다.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도, 우리는 몸을 움직여, 땅을 밟고, 주의 몸된 교회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예배에서만이 참된 영혼의 회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놓치게 이끄는 미혹이 인터넷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아포라(본질적인, 절대적이고 중요한)와 아디아포라(비본질적인, 상황적인)’의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아도 결론이 선명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는 단순한 건물 혹은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됨으로 인해, 그 건축물은 구별된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 하나님의 집(딤전3:15)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 나아갈 때는 구별된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하는 신앙행태는, 상황과 조건의 문제로 본질을 흔들어 버리려는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합니다.
인터넷 교회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은 코로나라고 하는 직접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도 여전히 득세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현실론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신앙의 감수성’에 대한 왜곡이 그 실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감능력을 통하여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교회를 홍보할 수 있고, 설교자를 드러낼 수 있고, 교회가 힘 있는 권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결코 영상예배가 일상의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음을 또한 의도적으로 의식하며 사용하게 될 때만이 의미있는 용처가 될 것입니다.
영상예배에 익숙하게 되면, 엔터테인먼트 기술에 의해 영적 감각이 둔화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찍을 때, 한 장면에서 보통 여덟 컷을 찍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영화는 장면당 스물네 개의 컷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것이 TV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미의 충족을 영화가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야구 경기를 보러 가면 TV 영상으로 볼 때보다 훨씬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현장 직관(直觀)은 분위기에 취할 따름이지, 선수가 공을 잡았는지 떨어뜨렸는지 그저 주변의 반응과 더불어 볼 따름입니다. 이에 비해 TV 중계는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천천히 돌리기도 하고, 다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장 직관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 광고 선전까지 등장하면, 그야말로 유혹과 세뇌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미래 시대에 교회 강단에 실제 목사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라, AI 설교자와 5G 데이터에 의한 영상이 강단을 장식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보다 훨씬 더 극적인 화면의 보여줌이 가능해져서, 강단이 쇼 프로그램의 무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지교회를 세우고 영상을 송출하여, 때로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한 시킨 무대에서, 예수님처럼 벽을 통과해서 목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한마디로 ‘쇼’하는 강단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미국 대형교회는 매 예배시간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만들어집니다. 멋진 배우의 등장처럼 목사를 등장시키고, 세트장을 꾸미듯 강단을 꾸며 매주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마치면 절로 아이패드를 꺼내어 그날 ‘쇼’의 값을 매기듯, 헌금을 결정하여 온라인으로 송금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과연 영향력 있는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겠습니까? 아마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앞서서, 좋은 기술 PD를 영입한 교회가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더 좋은 장비와 시설을 가지고 더 사람들을 이끌만한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는 것이 부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결국에 이것은 실상이 아니고, 가상일 따름인데, 가상의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정말 참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타락이 일반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시대는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상예배의 흥왕은 온라인 예배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연세가 드신 어르신부터 어린 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일상생활과 정보를 얻고, 이제는 예배까지 이를 통해서 드린다고 하니, 과연 이 흐름의 대세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 어떤 땀 흘림의 노력으로도, 로컬 교회와 예배를 폐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늘 우리는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정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의 기쁘신 뜻,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대해 궁구하며 찾는 은혜가 더욱 간절히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교회. 우리는 주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라는 이름을 이곳 저곳에 함부로 사용하면 안될 것입니다. 몸을 움직여,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구별된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참된 예배를 드림이 인생최고의 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