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여기 ‘신뢰하다’(בטח, 바타흐)는 말은 ‘매달리다’(to cling to), ‘신뢰하다‘(to trust), ‘의지하다’(to rely upon)는 뜻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매달려서 의탁하고 신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시37:3). 신앙인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의지하다’(שׁען, 솨안)는 말은 ‘기대다’(to lean), ‘의지하다‘(to recline)는 뜻으로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명철,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의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뢰’(信賴)는 굳게 믿고 확신하여 매달리는 행위를 가리킨다면, 의지(依支)는 어떤 것이나 힘 있는 사람에게 기대하여 도움을 얻기를 바라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 자신’ 사이에서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문예부흥 이후에 17-18세기의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철학과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이성(理性)에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인 것은 배격하고 인간의 이성에 합리적인 것만 받아들이려는 인본주의 사상이 일어났었습니다. 특히 이신론(理神論, Deism) 철학 사조와 19-20세기에 나타난 자유주의 신학은 철저히 인간의 이성에 절대 가치를 부여한 사고였습니다.
1892년 유니온신학교에 브릭스(C. A. Briggs) 교수는 취임연설에서 “기독교에는 세 가지 권위가 있는데 첫째는 성경이고, 둘째는 교회이고, 셋째는 이성인데, 인간의 이성(理性)에 더 가치를 부여해야 하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이성적 논리로 따져 보았을 때에 합리적인 것이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나온 것이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했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예수님의 동정녀 출생,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 예수의 육체적 부활, 이적들은 비이성적 요소들이라면서 부정하고 과소평가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자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절대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 지식, 명철에 절대 가치를 부여할지는 신앙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이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사55:9).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사상, 자신의 이론이 제 아무리 수준 있고, 고상하다 할지라도 절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겸손하게 내 사고, 내 이론, 내 철학, 내 주장을 그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없는 걸레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무릎 꿇고 엎드려야만 합니다.
“주여! 우리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알게 하소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