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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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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엽 목사]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35)

이정엽 목사
뉴비전교회 담임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그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영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의 시원함, 곧 배(창자)의 시원함을 통해서 그가 기뻐하시는 여부를 알려주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내적 증거이다.

물론 이와 반대로 시원함이 아닌 편치 않음이나 부담과 막힘은 하나님이 막으시거나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표시이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막힘을 통해서 우리로 기도하게 하신다. 잠 중에 혹은 평상시에 갑자기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영의 부담감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거역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도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보 기도를 통해서 위경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여러 성도의 간증들을 통해 확인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말라는 영의 증거를 통해서 사고를 피하는 경우들이 그런 경우들이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타지 말라는 강한 영의 증거를 통해서 사고를 피한 경우라든지, 예정된 일이지만 왠지 편치 않아서 취소함으로 생명을 구한 일들이 있다. 우리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한 방편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예감이 좋지 않다”라는 말로써 표현하는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우리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성령님의 내적 증거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요한복음 16:13에서 말씀하신 바이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기서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미래에 될 일을 우리가 예언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영(배/창자)의 시원함이나 막으시는 거리낌을 통해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또한 사고로부터 보호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7:10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항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이번 행선에 큰 피해를 본다고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내게는 이렇게 보인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는 영의 증거를 통해서 이 여행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의 증거, 내적 증거를 통해서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성령님의 인도의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이다.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따르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영의 음성이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우리의 영은 새롭게 창조되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영으로 우리의 영을 바꿔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영의 음성인 양심도 이전에 예수님을 믿기 전의 양심과는 전혀 다른 선한 양심으로 작동하게 하신다. 그래서 거듭난 우리의 영의 음성인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직이는 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갖도록 해주신 것이다.

느낌은 몸의 음성이다. 이성은 혼의 음성이다. 그런데 양심은 영의 음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느낌이나 이성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고 말씀하셨으니 느낌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이성을 우위에 두지 말고 영의 증거와 음성을 따라가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을 통해서 일하실 때 영의 내적 음성인 양심을 통해 일하신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보시면 그가 얼마나 선한 양심을 따라 움직인 사도였는가를 알 수 있다. 사도행전 23:1에서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간증하였다.

사도행전 24:15-16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하였다.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 바울은 내세와 마지막 심판과 부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비난받지 않는 흠없는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선한 양심대로 행동하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의 음성인 양심을 통해서 교통하시기 때문에 선한 양심을 따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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