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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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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엽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28)

이정엽 목사
뉴비전교회 담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주신 명령이다. 그런데 이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그 권세를 사용함으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토록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므로 누리는 권세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능력이 있는가?

마가복음 16:17-18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첫째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귀신을 예수님께 기도함으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직접 명령하여 귀신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신자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악한 영들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들을 정복하심으로써 예수라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다(엡 1:21-22).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박살내시고 무장 해제시키시며 마비시켰다(골 2:15). 이런 권세와 능력이 있는 예수님의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복음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새 방언을 말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게 되었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졌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권세를 가졌다면,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새 방언을 말하는 권세를 가졌다. 만약 이것들 중 어느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고, 어떤 것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따름이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이유가 없다. 방언은 우리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이다. 물론 우리가 방언이 아닌 기도로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도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 때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속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우리의 영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고 말씀하신다.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고, 우리의 몸이나 혼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다. 또한 그 영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해주신 새 영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의 필요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일치가 되도록 인도하시는데 그 일을 바로 방언이라는 영의 기도를 통해 하는 것이다. 물론 방언이 아닌 기도로도 그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우리 자신의 뜻일 수가 있기에 문제이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방언을 많이 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하였고, 방언의 유익을 알았기에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5절)고 말할 정도이다.

따라서 방언에 대하여 우리가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없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통의 시간을 갖게 하는 성령의 은사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권세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안 받겠다고 하고, 필요 없다고 거부하니까 받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은사를 우리 스스로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신 권세이므로 받아 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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