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선교사로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면서, 나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교인들은 대부분 해외 선교부를 담당하는 장로나 집사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열정과 충성도는 정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과 좀더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지요. 교회에서 이렇게 충성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정에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더군요.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교회에 충성을 다하느라, 정작 가정 안에 있는 문제를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선교사로 하나님께 헌신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자녀에게 복 주실 것이라는 공식이 그대로 본인들의 헌신에도 적용이 된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 주시는 내용이 좋은 학교, 번듯한 직장, 성공적인 사업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어느 목회자는 “해외 선교를 안 하면 교회 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설교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는 ‘말씀 중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얼마나 옳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순종의 삶은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이민교회를 만나면서 교회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제가 처음 달라스에 와서 성경번역 훈련을 받을 때 한인 교회의 수가 약 20여개였습니다.
그런데 2년 반 후 달라스를 떠날 때 두 배로 그 수가 늘어났더군요. 복음 전도로 교회가 늘어났다면 좋겠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난 내분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주일 예배 때 서로 대립하는 양측을 분리하느라 경찰이 출동하는 교회도 있었지요.
내가 있었던 교회도 목회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황당하게 여겼던 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신뢰를 줄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이렇게 교인은 교인대로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불신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도 한국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이 ‘말씀과 삶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라는 걸 보게 되었지요. 결국 미주 이민 교회의 현실의 원인은 한국 교회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이런 문제 의식을 갖게 되면서, 저는 앞으로 무엇을 선교사로서 교회와 나눠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단한 것은 선교 사역의 보고는 선교보고회를 따로 마련했을 때 하고, 예배 시 설교 중에는 선교지에서 내가 깨달은 말씀과 적용에 관하여 나누기로 한 했습니다.
하지만, 이민 교회는 한국에 있는 교회와는 달리 좀 더 특수한 처지에 있더군요. 한인 이민 교회는 백인이 주도하는 주류 사회에 적응하려는 한인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기에 주류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욕구가 남다르다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여유 있는 생활이 아니라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되거든요.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도 이민자의 자리에 있게 되면 과거의 영광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영광은 그냥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게 되지요.
그래서 이민자들에게는 ‘서운함’이 가슴에 묻어 납니다. 주류 사회에 대한 ‘열등감’도 빼놓을 수 없구요. 이러한 현상을 나는 1980년 대에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이민 교회의 목회는 ‘다독이고 위로하는 목회’라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목회 현장으로 이동하는 저에게는 미국에서 그런 목회를 한다는 게 답답하게만 여겨졌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약 15년의 목회 기간 동안 교인들의 응석(?)을 받아주다가 끝나는 목회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미국 이민 교회 목회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민 목회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중에 문득 파푸아뉴기니 사역이 생각나더군요. 선교 역사가 한국과 비슷한 파푸아뉴니기에서 제자양육을 시도했던 선교단체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제자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진 형제 여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기들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신 것을 알고 그 책임을 다하려는 마음은 분명했지요. 이들의 사역과 삶을 지켜본 다른 선교사들이 꽤 관심있어 하고, 나중에는 이 형제들을 신뢰하고 친분을 맺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이 형제들이 내가 그곳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제자양육이 저와 함께 했던 형제들에게는 가능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저는 이민 교회에서도 주님이 제자양육을 가능하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르고 달래는 이민 목회를 넘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뛰어들 수 있는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것에 마음을 두고 이민 목회로 결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