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때 종종 달리기 경주에 비유한다. 믿음의 경주는 단거리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더 가깝다. 단거리와 달리 마라톤은 달리다가 실수로 넘어져도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다. 마라톤 경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주를 해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결승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중간에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마치는 것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신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첫 번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가 자기의 영광(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는 분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깐 당하는 고난이다.
세 번째,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당할 때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우리는 이 세가지 약속 안에서 우리 인생을 보면, 우리 인생은 우리가 개척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여기서 염려는 <메림나>라는 단어인데 “불안스러운 두려움”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우리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염려가 언제 사라지나? “주께 맡기라.” 주님께 맡길 때 우리의 염려가 사라진다. 여기서 맡긴다는 단어는 <에피립토>라는 단어인데 ‘던지다. 버리다.’는 뜻이다. 염려를 자기가 가지고 있지 말고 예수님께 던져 버리라는 말이다.
염려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가 있으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가? 그것을 예수님께 던져버리면 되는데 안 던지면서 힘들어 하고 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런데도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이 정말 주님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 던져놓고 평안하게 살아간다.
염려와 마귀는 연관이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염려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마귀 이야기를 한다. 그럼 염려가 마귀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마귀가 우리를 삼키는데 염려를 통해서 삼킨다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마귀가 우리를 공경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가장 심한 경우는 귀신들림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장악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탄나게 만들어 버린다.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염려를 통해서 공격한다. 왜냐하면 염려가 바로 불신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 속에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9)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한다.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밖에 없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첫번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라. 두번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마귀가 심어주는 염려를 이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마귀의 공격을 이기고,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승리하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