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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1월 23, 2024

[이정엽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26)

뉴비전 교회 담임목사 이정엽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자들이라고’(엡 2:6) 말씀하였다. 이런 우리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무런 권세와 능력을 주시지 않았겠는가! 단지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해 내시고 당신의 자녀로 입양하신 것으로 끝내실 하나님이시겠는가!

그래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무릎을 꿇을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대적하고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주시는 죄 사함의 권세까지도 주셨다(막 16:17-18; 요 20:23; 눅 24:47).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주셨지만 우리가 그런 권세를 가진 것도 모르고, 알면서도 믿지도 않고,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백만 불 수표를 주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액자에 넣어 보관해 두는 것과 같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면서도 그 수표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굶어 죽어가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고, 적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현재 상태와 수준이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사도들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알았고, 그것을 사용함으로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한 종교 지도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이름이 갖는 위력을 알고 두려워할 정도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 4:16-18)고 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의 위력을 알았기에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사도들을 위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무슨 기도를 하였는가?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9-30) 핍박하는 자들의 위협함을 굽어살펴달라는 것은 주목해달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중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예수님께서 앉으신 하늘 보좌에서 일어서셔서 스데반의 죽음을 주목하신 것이 아닌가! 이처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이 핍박 중에도 담대히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며 가르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또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모인 곳이 진동하며 기도한 모든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도들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알고 믿고 경험하였던 것이다.

결국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예수님의 이름은 이토록 중요하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대적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과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빠진 그들의 신앙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의 신앙의 핵심이자 기반이자 뿌리였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신자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체험하고 있는가? 혹시 기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끝맺음으로만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마귀와 귀신을 대적할 때만 사용하고 있는 예수님의 이름은 아닌가? 그것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요청하며 간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알고 경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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