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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7월 27, 2024

[박영실 수필가] 새도 발이 있다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바람이 실어다 준 향기를 따라 남편과 정원을 산책했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플라타너스 아름드리는 나뭇잎을 떨구고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예고 없이 찾아온 강풍이 정원 곳곳에 상흔을 남기고 갔다. 여름내 무성했던 나뭇잎은 그 몫을 다했는지 다양한 빛깔로 나뭇잎에 흔적을 새겨 놓았다. 아름드리 우듬지 위에 바람이 마중 나왔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에 흔들렸다.
호수를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어떤 이질적인 물체가 우리 발 앞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파충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개구리라면 너무 크고 들쥐라면 아주 가볍게 느껴지는 어떤 움직임이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숲에서 총총거리며 길가로 나왔다.
“아, 참새구나! 참새가 왜 걸어서 나와?” 나는 방금 눈앞을 지나간 참새 꽁무니를 그제야 발견하고 소리쳤다. “새도 발이 있잖아.” 남편의 반응을 듣고 나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새도 발이 있지.’ 당연한 말인데 무슨 이유인지 아기가 처음 언어를 배우고 듣는 것처럼 생소하고 낯설었다. 새는 날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새도 발이 있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편견이 어떠한 여과장치 없이 반응했다.
몇 년 전, 지인들과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꽃꽂이 화병이 있었다. 단순한 꽃꽂이가 아니라 예술작품 수준이었다. 색상의 조화나 전체적인 균형감각과 각도 등이 예사롭지 않았다. 회원 중에 화원을 경영하는 부부가 있어 당연히 그 여주인의 작품이겠거니 했다. 몇 개월 뒤, 우연히 그 꽃꽂이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 바로, 화원의 여주인이 아니라 큰 체구에 무뚝뚝하기까지 한 그 남편이었다. 두툼하고 투박해 보이는 그 손끝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꽃꽂이 작품이 연출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보았던 꽃꽂이가 여인의 솜씨일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편견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중동 지역과 튀르키예에서 디아스포라 난민들을 마주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중동 지역 분열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 흩어진 난민의 실태는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된 것 이상이다. 특히 2011년 3월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 직후 중동과 유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난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 바로 튀르키예다. 2021년 8월 기준, 튀르키예 거주 난민은 500만이 넘는데 그 중 시리아 출신이 360만이라 한다.
튀르키예의 중남부, 인류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리아 내전 직후 튀르키예로 온 가족을 만났다. 한 남자가 손주로 보이는 사내아이 둘과 가는 중이었다. 나와 일행은 그에게 길을 물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그 집에까지 초대되었다. 쉰 살이라는데 일흔 살이 넘어 보이는 그는 그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아내와 일곱 자녀가 같이 살고 있었다. 잔물결이 일렁이는 그의 얼굴에 난민들의 고단한 삶이 스며있었다. 난민이 된 이후,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 음식과 과일을 사 왔다. 그들 처지로서는 과분해 보이는 음식이었다. 외지인들을 대할 때 느낄 법한 적대감이나 경계심 같은 것도 없어 보였다. 언어와 문화, 피부색이 달라도 짧은 시간에 소통이 이뤄지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난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캠프를 개최했다.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열심히 배우려고 하던 그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만난 난민들은, 이전에 지레짐작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시리아 내전 때 남편이 전사하고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난민이 된 스물다섯 살 미망인도, 포탄 테러로 한쪽 다리를 잃고 나머지 한쪽도 2차 감염의 우려를 안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스물다섯 살 청년도, 내전 때 테러로 가장을 잃고 하루 열 두 시간의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도 모두 각자의 삶의 무게를 안고 디아스포라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처한 고통과 상황 때문에,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삶의 현실은 고단해 보였지만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산책을 하고 나면 내 마음의 정원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하리라. 나의 편견으로 내 주변에 호흡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 무가치하게 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상념에 잠긴다. 우리는 때로 새의 날개 같은 가시적인 현상 이면에 숨겨진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내 정원에 편견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랄 때마다 숲에서 걸어 나온 참새와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새도 발이 있다! 이 당연한 말이 오래도록 마음 언저리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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