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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4월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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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문 목사] 사랑의 수고

안광문 목사(생명샘교회)

부제: 사랑은 희생과 수고를 동반하는 것

데살로니가전서 1:3에서는 “사랑의 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의 수고”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은 자기희생적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는 수고가 동반되지만, 그것이 결코 짐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희생과 수고가 요구되지만 그런 희생과 수고가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 사람에게 낙심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평일 오전에 Substitute으로 일을 하는데, Substitute은 학교 선생님들이 학교에 출근하실 수 없을 때 대신 학생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내주신 과제를 하도록 돕거나 학생들이 혼자서 공부하고 문제가 없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 시간 동안 저도 성경과 책을 읽을 수 있고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수월한 편입니다. 지난 몇 주 전에는 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Special Class였습니다. Special Class는 저 혼자 학생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전문 선생님들이 계시고 저는 그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저학년 반이었는데, 학생들이 말을 못 해 의사소통이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교실 안에서 정신 없이 계속 돌아다녔고, 어떤 녀석은 땡깡을 부리면서 자기 머리를 바닥에 쳤습니다. 그냥 두면 다칠 것이고 그렇다고 한국처럼 야단을 치거나 못 하게 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바닥에 쿠션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런 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교실 한구석에서 오줌을 싸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정신없었습니다. 처음에 정말 후회했습니다. “내가 여기를 왜 왔나? 여기서 어떻게 8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선생님들이 정말로 열심이었습니다. 아니, 열심이라기보다는 진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말하는 법, 글을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비전문가인 제가 아이들을 붙잡거나 그렇게 해도 되는 건지 몰라 쭈뼛쭈뼛 했는데 하도 아이들이 정신없게 만드니까 선생님께서 저에게 아이들을 붙잡아 줘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중 조금 덜한 학생에게 저 더러 책도 읽어주고 공놀이도 같이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쯤 거의 탈진 상태가 됐고 속으로 다시는 여기 안 온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저 더러 아이들을 잘 돌본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시면서 다음에 또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겉으로는 Cool 하게 제 명함까지 주면서 기꺼이, 언제든지 연락하시라고 했지만, 정말 두 번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들에게서 “사랑의 수고”가 무엇이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수고는 월급 때문만이 아닌 거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사명감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 같으면 아무리 월급을 많이 주고 아무리 사명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무감만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입니다. 거기다 이분들은 아이들을 향한 수고를 결코 짐으로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수고”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요한일서 4:7에서 사랑은 하나님에게 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근원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로마서 5:8에서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희생과 수고를 동반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를 짐으로 여기시고 억지로 감당하셨던 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여기셨습니다. (엡 1:5)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희생과 수고로 하셨고 짐이 아니라 기쁨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사랑에는 희생과 수고가 필요하지만, 결코 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짐으로 여긴다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나요? 그분들을 위해 희생과 수고를 하고 있나요? 만일 그것이 짐으로 여겨진다면, 의무감으로 해야 한다면 진정한 사랑일까요?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이 기쁨을 맛보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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