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구약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 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둘은 구분될 수 없는 동전의 앞 뒷면과 같습니다.
사랑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해 배려해 주는 것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DNA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은 사랑을 되돌려 받아 행복하고, 성공할 확률도 높습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불장군식 지도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직원들을 배려하는 상사가 존경받고 사랑받습니다.
예전에는 회사가 똑똑한 사람을 뽑는 일에 주력했지만 요즘은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갈등을 만들어 내는 직원은 회사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품 배려하는 성품은 오늘날 성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위험성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쉽게 희생합니다. 자기 소신을 포기하고 후회합니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며 살다 보니 휘둘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면서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솔로몬은 위대한 믿음의 왕으로 시작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림으로 지혜를 선물로 받았고 성전을 지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생애 말년 우상숭배에 빠지고 맙니다. 우상을 위해 신전까지 짓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합니다. 열왕기상 11장에 보면 그 이유를 아내 사랑 때문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외국의 다양한 여인들과 정략결혼 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여인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신전을 만들어 주고 우상을 향해 분향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섭게 경고했던 우상숭배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내 사랑이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범죄도 아내 사랑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정령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단은 아담을 넘어뜨리기 위해 하와를 충동질해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그 선악과를 건네 줍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만약 사단이 처음부터 아담에게 도전했다면 그렇게 쉽게 넘어졌을 리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요구이니 쉽게 굴복한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인류의 타락도 아내 사랑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인간들의 사랑에 경계선을 그어 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들게 느껴지는 성경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7절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 구절 때문에 신앙을 갖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배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경계선을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갈등이 심한 곳이 가정입니다. 사랑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부정적 감정인 이기심과 결합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집착이 되는 경우가 그 예입니다.
많은 가정 상담가들이 부모가 자녀를 너무 사랑하면 자녀가 비뚤어진다는 말을 합니다. 부모가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연인들은 너무 사랑해서 집착으로 흐릅니다. 사랑에 적당한 거리유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현실세계에서 누군가를 최고로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짧은 순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인간을 향한 참된 사랑이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부가 자식보다 부부 서로 사랑할 때, 부모의 사랑에 안정감을 느끼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사랑의 경계선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여기에 순종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경계선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는 둘로 쪼개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경계선이 분명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