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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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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본향으로 간 친구를 고국으로 보내며

서정숙 사모 시인 달라스문학회회원

달라스는 썬더스톰과 폭우에 이어 본격적인 폭염경보에 ‘좀비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지만 크레이프머틀트리의 소담스러운 뭉텅이 꽃이 사랑스럽습니다. 뭉게구름이 내려앉은 듯 순백의 나무, 신비한 자카란다 빛을 닮은 아담싸이즈, 동백같은 정열의 색으로 여장부처럼, 연분홍 한복의 약혼식 신부같이 청순하게. 또 가녀린 몸에 진홍빛이 고운 나무는 단촐했던 덕이의 결혼식을 생각나게 합니다.
중학교 일 학년 때 만난 덕이, 명이, 우리 셋은 늘 붙어 다녔고 둘 다 언니가 없어 울언니를 좋아했습니다. “언니 종아리는 마포에서 썩기에는 너무 예뻐요. 한번 돌아봐요.언니”. 돌아선 언니의 오금지와 허리를 간질이고 도망가며 매롱거리다가 잡혀 등짝 맞던 우리. 언니는 우리를 야살쟁이, 얄개라고 불렀습니다. 결혼해도 같이 살 거냐는 말에 삼층집 사서 함께 산다고 합창! 일 층은 책벌레 정이. 이층은 놀라리 명이, 삼 층은 야실이 덕이. 자기들 놀다 늦게 들어오면 집순이 정이가 문 열어 줄 수 있어 좋다고 깔깔 웃었습니다.
버스회사 사장인 덕이 아버지는 피아노를 사주며 네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켜 서울의 중학교로 유학 보낸 거였습니다. 덕이가 로저 윌리엄스의 고엽- Autumn Leaves을 피아노 치며 들려줍니다. 바람이 몰아치자 우수수 떨어져 도르르 구르는 가을 잎들의 고운 소리. 당시는 하나뿐인 집전화기를 든 채로 서서 들어도 좋았습니다. 권사님이신 할머니가 교회에 철야 가셔서 피아노 친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꿈꾸듯 들었고 또 “달빛이 비치는 호수의 물결에 흔들리는 것같이 몽롱해”라는 설명과 함께 들려주던 베토벤의 문라이트- 월광 소나타.
오래전 한국서 목회할 때 교회 건축하며 사기당하고 맘도 몸도 피폐해 있었습니다. 식물인간처럼 겨우 버티다 보니 의사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때 선뜻 병원부터 가라던 친구. 자기도 당장 가진 돈은 없지만 빌려서라도 다녀오면 꼭 갚아주겠다고 하던 고마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 세월은 우리 가족을 달라스로, 친구는 미국인과 결혼 후 애리조나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서로의 기도 제목을 전화로 나누기도 했지만 둘다 혹독한 이민 생활을 겪어야 했습니다. 덕이의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도 꽃만 보내고 못 갔습니다. 스트로크 된 내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가족 생계를 떠맡은 때라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사별 후 한국으로 이주한 지 10여 년 만에 돌아오자 또 학교에 등록했다며 봄 방학에 애리조나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이번엔 아들이 비행기표를 사 주었습니다. 최고급 메이커로만 살더니 ‘후추 소금 단발’에 워마트표 백팩, 20불짜리 워마트신발에 볼캡으로 공항에 나타난 친구. 그 나이에도 공부에 올인하며 젊은이들에게 엄마와 할머니 마음으로 대하는 너그러워진 모습!
결혼 생활로 생긴 ‘편집증 성격장애’의 시련 중에도 엄마의 기도와 동생가족의 사랑으로 한국에서 ‘음악치료 석사’를 마쳤습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도 논문을 읽어보니 친구가 치료받던 시간이었던 듯 합니다. .
5월 초. 낯선 전화는 받지 않는데 며칠간 잠을 설치며 무의식이 의식을 누른 때문인지 받은 전화! 애리조나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는데 쿵! 친구의 이름을 말한 경찰이 “그녀가 죽었다!”고 한 순간 지구가 멈췄나 봅니다. 마침 ‘내 작은 둥지’에 있던 손님이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 친구 여권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어서 연락했다는 말이 들리자 비로소 퍼뜩! 덕이가 중요서류를 넣어 늘 지고 다니던 백팩이 생각났습니다. 경찰이 묻는 대로 답한 후 한국 남동생의 연락처를 주고 뇌진탕 후유증으로 아직 비행기를 못 타니 친구를 어디로 데려갈는지 계속 텍스트 해주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코비드 때문에 세번이나 한국행을 접어야 했던 친구. 작년 6월엔 엄마가 먼저 하늘나라 가시고 10월에는 내가 머리를 다친 후 이어지는 검사와 치료로 달라스에 오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도 어지럽고 아프다기에 걱정했는데 그리 빨리 갈 줄이야! 2월에 나더러 몸조심하라고 한 후 연락이 안 되더니 수명이 다해 편안하게 자연사했다는 검시결과를 들었습니다. 모든것이 편해지면 다시 만나자며 언니가 늘 잘해 줘서 고마웠다고 안부하라는 문자가 유언이 될 줄 몰랐습니다. 내가 아파도 친구를 오라고 할 건데 하는 후회로 맘이 아팠지만, 철모를 때의 우정을 천국까지 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동생 부부가 작은 추모예배 후 교회 장지의 어머니 옆에 안장시킨다고 합니다. 본향에서 이미 엄마와 있을 친구. 비록 재가 되어 고국으로 가지만 고단했던 육신, 엄마 옆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며 ‘투산 크리메이션 써비스’를 거쳐 모든 서류와 함께 한국으로 가고 있다는 트레킹넘버를 받았습니다.
위로와 용기 희망을 주시며 죄인인 우리에게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며 함께 기도하던 친구! 천국에서 마음껏 음악을 즐길 친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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