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들과 3년 동안이나 함께 하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부모님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제자들을 먹이셨고 가는 곳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떠나시게 되자 뒤에 남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아처럼 느껴졌고 근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런 상황속에서 제자들을 보시고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을 보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성령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16절에서도 성령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6절을 보면 16절에서 언급된 보혜사가 바로 성령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요청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혜사는 돕는자 즉 Help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돕는자라고 말씀하신데는 이유가 있는데, 성령이 오셔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 바로 우리를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셔서 능히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서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님 외에 다른 보혜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로서 지금까지 함께 하셨고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늘나라에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하시며 도와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라면 성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을 잘 설명한 구절이 로마서에 있는데 로마서 8장 26절에 보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우리 인간을 연약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어려움을 당할 때나 낙심가운데서 실망하며 있을 때에 어떨때에는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것에만 급급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자기가 무엇을 기도해야 될지도 모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를 도와주셔서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우리들이 잘 아는 성전의 미문의 앉은뱅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앉은뱅이는 현실의 삶에 지쳐서 정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장애를 가지고 계속 있었기에 그 병이 나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의 소원은 단지 하루를 살기 위한 동전 몇 개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보고 “우리를 보라”라고 말했을 때,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무엇을 얻을까하여 그들을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자신에게 오늘 필요한 양식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 몇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어나 걷는 것임을 알고 그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발목에 힘을 얻어 걷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앉은뱅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앉은뱅이의 소원은 일어나 걷는 것이었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를 통하여 앉은뱅이의 잃어버린 진짜 소원을 회복시키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이런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힘들어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늘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날마다 기도할 때에 이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