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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9월 18, 2024

[박영실 사모] 낙타의 노래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컨퍼런스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일정이 끝나고 공항에 가기 전에 잠시 숙소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내 시선이 흘러간 것은 기념품 진열대 위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낙타조각품이었다. 살아있는 낙타들이 사막을 행진하며 나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올리브나무로 만든 조각품인데 그 눈빛에 서린 낙타의 눈망울과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낙타의 눈빛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낙타는 사막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 방문했을 때 거리에 낙타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 길옆을 동행하듯 따라갔다. 눈앞에서 낙타 실물을 마주했는데 흠모할 만한 어떤 모양도 없었다. 느릿하게 걷는 다리와 덥수룩한 털은 노폐물에 닿아서인지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 모습조차도 애잔해 보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낙타의 눈빛은 맑고 선명했다. 물욕과 야망으로 가득한 사람의 눈빛과 달랐다. 모든 것을 초연한 듯한 그 눈빛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무거운 짐과 사람을 태우고 땡볕 아래를 걷는 낙타의 눈에 슬픔이 어려 있었다.
낙타는 발목의 위치가 높다. 사막의 60도에서 70도에 이르는 낮 지면 복사열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고하고 품위 있게 걷는 자태는 사막의 모델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다. 일정한 보폭과 속도로 걷는 모습은, 거대한 성을 향해 목표 지향적으로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방향이 아니라 속도 위주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낙타의 자태와 걸음걸이는 초고속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었다. 한발 빨리 걷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기의 보폭에 맞춰 걷다 보면 언젠가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을까.
낙타의 삶은 전적으로 이타적이다. 인간과 함께 살아온 낙타의 역사는 사천 년이 넘었다. 낙타는 유목민들에게 생명과 같은 존재다.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자주 이주해야 하는 그들에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동행자이다. 낙타의 배설물은 사막에서 연료로 사용되고, 털은 이불이나 의류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낙타의 젖은 유목민들에게 사막에서 먹거리이자 수분이 된다. 낙타는 털을 깎아도 반항을 하지 않는다. 마치 순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인의 손에 맡긴 채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털까지 아낌없이 내어준다. 최소한의 자기 보호 장치가 없다. 약육강식의 생존본능에 의한 세상 법칙과 역행한다.
물은 낙타에게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생명과 같다. 낙타는 물을 저장하는 위가 따로 있다. 10분에 10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는데, 한 달 넘게 물을 마시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 사막기후를 견딜 수 있는 최적의 동물이다. 하루에 40킬로미터씩 최대 15일까지 걸을 수 있다. 낙타가 사막에서 견딜 수 있는 비결은 등에 있는 혹 때문이란다. 혹에 영양소를 저장해서 한 달 이상의 사막 여정에서도 견딜 수 있다. 짐같이 거추장스러운 혹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니! 혹을 벗으면 사막을 걷기 편리하겠지만, 그 혹이 없으면 사막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다. 낙타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무거운 짐이 낙타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아이러니한 신체 구조와 삶이 신비롭다.
유목민들은 일 년에 서너 번 이사한다. 낙타들의 등에 짐을 싣고 이주하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었다. 무거운 이삿짐을 등에 지고 사막을 걷는 낙타들의 행렬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낙타는 봄에 매서운 사막의 모래폭풍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능선을 걷는다. 겨울 추위보다 혹독하다는 모래폭풍을 마주하며 멀고 험한 여정을 떠난다. 낙타의 속눈썹이 유난히 긴 이유는 모래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모래폭풍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사명을 수행하고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인간은, 사막이 건네는 노래를 듣지 못하기에 사막을 빨리 지나가길 원하지만, 낙타는 사막의 노래를 듣기에 안단테의 속도로 걷는다.
사막을 지나는 동안 각자의 등에 짊어진 낙타의 혹과 같은 짐이 있으리라. 짐이 없으면 삶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광야를 무사히 지나오지 않았을까. 나를 더 견고하게 세우고 지탱해 주는 도구가 아닐까. 지금 내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십자가라면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가 아닐까. 때로는 벗고 싶은 짐일지라도 그 짐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은혜가 아닌가.
낙타를 마주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낙타의 삶은 광야를 지나는 인간의 삶과 가장 흡사하다.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내가 낙타에게 마음이 머문 이유였으리라. 낙타는 황량한 사막뿐인 모래 무덤을 홀로 걷는다. 인간에게 등을 내어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침묵하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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