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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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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재] “나는 존재한다. 고로 기적이다.”

전동재 박사 UT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콜레스테롤 대사관련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현재 Dallas Baptist University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생명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도, 도, 도” 일본어로 도츠게키(전군 돌격)를 뜻하는 암호가 전해지자 항공모함 여섯 척에서 출격한 350대의 일본 전투기는 진주만에 평화로이 정박해 있는 미군의 태평양 함대에게 폭격을 개시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미국 자치령 하와이 제도 오아후 섬 진주만에 위치한 미합중국 해군기지가 기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른바 진주만 폭격으로 알려진 이 공습으로 열 두 척의 미 해군 함선이 파괴 되거나 침몰했고 2334명의 미군장병과 103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진주만 공습 이후 전력 복구를 위해 바빠진 곳은 미국 본토의 군수공장 뿐 만이 아니었다. 하와이에 설치된 Station HYPO라는 미 해군 암호 해독 팀은 복잡한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에 사력을 다하게 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Joseph Rochefort라는 장교였다. 그는 진주만 공습이 일어난 6개월 이후 일본군이 다시 AF라는 미국의 지리적 목표물을 곧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해독해내지만 AF가 어딘지 특정해 낼 수는 없었다. 다만  하와이에서 1300 마일 북서 쪽에 위치한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고 추측 할 뿐 이었다. 전력을 대규모로 움직여야 하는 작전에서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 Station HYPO 팀원 중 한명인 Jasper Holmes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일본군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가짜 정보를 만들어 흘려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드웨이 섬에 미군이 쓸 식수가 2주 후에는 고갈 된다는 솔깃한 정보를 흘려 보냈다. 미국이 자신들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일본군은 이 미끼를 물었다. Station HYPO 팀은 일본군 사이에서AF에 물이 2주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내용의 암호가 오가는 것을 잡아낸 것이었다. 이로 인해  AF는 다름아닌  미드웨이 섬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뜻하는 것으로 확정 짓게 되었다. 미해군은 전력상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치룬 결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게 되었다. 일본은 한 척의 미국 항공 모함을 파괴한 반면 미국은 출전한 네 척의 일본 항공모함 모두를 파괴시켰다. 정보전의 승리였다.

또 다른 한편 미군은 나바호 인디언들의 언어를 암호로 만들어 무선 통신에 활용함으로써 일본군의 암호 해독을 따돌리기도 하였다. 나바호 인디언들의 언어는 문자가 없으면서도 복잡한 언어 체계를 갖고 있었기에 일본군들은 들어도 해독할 수 없었다. 특수한 암호사용과 암호 해독 능력에 의해 전쟁의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말해준다. 

생명속에 감추어진 암호를 해독하는 것 역시 인간을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었다. 생명 정보는 부모로부터 절반씩 물려 받은 DNA라는 구조 속에 존재한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란 영국인 과학자들이 로잘린 프랭클린의 Photograph 51 이라는 DNA의 엑스레이 회절 이미지를 분석하게 되면서 DNA는 2중 나선임을 증명해 냈다. DNA의 상호 보완적 이중 나선 구조는 정보를 안정적으로 저장할 뿐만 아니라 DNA 복제나 단백질 발현을 위해 열리고 닫힐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하기에 적합했다.

인간의 생명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1990년도부터 2003년까지 생물학적 국제 공동연구 사상 가장 큰 연구 프로젝트인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27억 달러를 투입하여 13년간의 지속된 공동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이 적어도 10만개 이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2만개 남짓의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인간 유전체의 99% 이상은 기능을 알 수 없는 DNA 조각이고, 실제 기능을 가진 유전자는 유전체의 약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른바 “Junk DNA”라는 말이 회자 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물론적 진화론을 잘 설명해 주는 듯 했다. 한 마디로 우리 DNA의  99%는 단백질 발현을 하지 않는 쓰레기들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DNA가 단백질을 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더욱이 Junk DNA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또 다른 국제 유전체 연구인 ENCODE라는 컨소시엄은 한 동안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99%의 DNA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대한 양의 조절 스위치, 제어 요소 등이 전략적으로 배치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Junk DNA라는 단어는 종말을 맞게 되었다. 유전체는 80% 가량이 유전자 조절 기능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더 확대되어 가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DNA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더 발전된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생명에 컴퓨터 알고리즘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 정교하고 효율적인 기계 같은 단백질도 있으며 암호화된 DNA 정보도 있으나 생명 자체가 프로그램이거나, 기계이거나, 정보 자체는 아닌 것이다. 더욱이 어떤 인간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새로운 생명이다. 그러니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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