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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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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목사] 시니어들을 모십니다.

김진호 목사
달라스 장애인학교(EIS ACADEMY) 교장
빛내리교회 장애인사역(GL Ministry) 담당 사역자

얼마 전에 한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요즘은 스팸전화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올 경우에는 대부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장애관련한 문의나 주정부에서 오는 전화들이 왕왕 있기에 Scam likely라는 발신자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받게 된다. 

그날도 모르는 번호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응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한 시니어 남자분께서 신문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고 말문을 여셨다. 그리고 ‘EIS 달라스 장애인 학교’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물으셨다. 신문으로 대충의 정보는 득하였으나, 그런 곳이 정말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담당자는 믿을 만한 사람인지 등등의 정보를 얻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필자는 ‘달라스 장애인 학교’와 학교가 하는 일들을 소상히 말씀을 드렸고, 설명 이후에 그분이 이렇게 다시 물으셨다. “나 같은 늙은이도 도움이 될까요?” 이제는 필자의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 어떤 봉사를 하시고 싶으신지요?”, “혹시 어떤 일을 하셨었는지 여쭤도 될까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태권도 도장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필자는 그 말씀이 너무나 기뻤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태권도 사범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태권도는 장애인들에게 무척이나 좋은 운동이다. 첫째는 예의범절, 그리고 규칙을 알도록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신체를 건강하게 단련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근의 태권도장을 빌리거나 사범님을 초청해서 매주 1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은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기도해 오던 제목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일에 적합한 분이 드디어 나타나신 것이다. 며칠 뒤 직접 만나 뵈니 총기도 아주 좋으시고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를 가지신 분이셨다. 그분은 자신을 73세라고 소개하셨다. 그리고 제일 맘에 들었던 부분은 수염.. 회색빛깔의 긴 수염이 마치 금강산 깊은 심심유곡에서 수련을 하신 도사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도사님이라고 부른다. 사실 우리 도사님께서도 사연이 있으신 분이셨다. 사람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분의 사연은 필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도사님은 얼마 전 사랑하는 아내를 멀리 떠나보내시고, 외로움과 헛헛함에 주중에 한번 아내가 묻힌 cemetery에 가셔서 몇시간 동안 묘비석 옆에서 아내에게 문안하며 ‘인생 참 별거 없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쓸쓸히 사셨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서 겸사겸사 봉사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이제 2달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해하셨지만, 이제는 거의 학교 스탭 수준으로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어하시며 주 3회 봉사를 오신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도사님 얼굴을 보니, 신기하게도 얼굴이 환해지신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얼굴이 밝아지셨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늙은 놈이 여기 와서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래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우리 달라스 장애인 학교에 오시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신다. 그런 말씀들이 우리에게는 사실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그렇게 위로도 해주신다. 그런가 하면, 도사님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셨기에 매트의 상태와 청소 상태에 상당히 민감해하신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에게 매트를 닦아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1시간 동안 걸레를 수없이 빨아가며 깔아 놓은 파란색 매트를 걸레로 다 닦으셨다. 덤으로 사랑의 잔소리도 주셨다. “위생상태가 중요하니 꼭 닦으세요… 건강해야 돼요… 대충 닦으면 안돼요.” 덕분에 우리는 태권도 시간에 사용하는 매트가 그렇게 딥블루의 예쁜 매트였는지 알게 되었다. 사진도 몰래 한컷 찍어 두었다. 귀한 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도사님 말고도 몇 분의 시니어 봉사자들이 요즘 함께 해주고 계신다. 하이패션 사장님, 전업주부,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달라스 초미녀’ 님, 세탁소 사장님. 세탁소 사장님이 어느 날 필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저는 지금껏 잘못 살았습니다.”, “저는 나 자신과 내 자녀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저는 매주 갈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어요.”, “저에게 그 학생들이 커다란 스승입니다.”, “많이 배우고 깨닫고 늘 감사하는 삶으로 노년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것이 미국 사람들은 발런티어 문화가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봉사자들이 넘쳐나고 후원모임이 있으면 열심히들 한다. 그리고 미국기관들이 운영하는 주간 장애인 보호 센터들(데이햅)에 가보면 ‘시니어 발런티어들이’ 굉장히 많다. 기실, 젊은 사람들은 주중에 봉사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풀타임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30, 40대들은 자녀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낮시간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시니어들의 역할이 너무나 소중하고 우리 같은 장애인 학교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학교 프로그램은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가끔씩 우스개 소리로 거의 ‘노인대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뜻은 시니어 봉사자들도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서 오셨지만, 프로그램들이 너무 본인들한테도 재미가 있기에 어떤 때에는 본인들이 눈에 불을 켜시고 참여하시기도 한다.

저희 EIS 달라스 장애인 학교는 시니어분들을 환영합니다. 주저 말고 오시면 함께 의미 있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 시간들을 저희와 함께 하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백세시대/특별기고’ ‘노년기 자원봉사는 보람찬 인생으로 바꿔준다.’의 한 부분을 인용함으로 오늘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인간에 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다음 세 가지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간의 삶이란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가 없고 좋거나 싫거나 남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셋째 한 개인의 삶은 유한하지만 그 삶의 보금자리인 사회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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