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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4월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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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목사] “인생, 기차 창 밖으로 소도 보이고 말도 보이고 …”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경기에, 마라톤 종목으로 출전하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존 스테판 아쿠아리’ (John-Stephen Akhwari) 라는 선수가 왔습니다. 마지막 올림픽 경기인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고 모든 선수들이 결승선을 향해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출발 몇 분 만에 옆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때 무릎이 찢어지고, 정강이 뼈가 탈골되는 그런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안전 요원들이 와서 더 이상 경기에 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면서 끝까지 결승점을 향해 달려 갔습니다. 결국 폐막식도 끝나고 모두가 떠나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붕대를 감고 피를 흘리며 아쿠아리 선수는 결승선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기자가 그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경기였는데,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뛰셨습니까?” 그랬더니 “나의 조국 탄자니아는 나를 출발선에 서라고 보낸 게 아니라, 결승점까지 들어오라고 보내 주었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 마라톤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도 출발선에 서 있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결승선까지 들어오라고 보내주신 것 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결승점을 향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의 결승선까지 통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창밖으로 소도 보이고 말도 보이고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것 때문에 기차에서 내리면 결국 종착역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기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는 것처럼, 우리 인생 이런 일도 만나고 저런 일도 만나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종착역까지 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뜻이고, 또한 우리를 향한 구원이고, 결국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끝까지 달려가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뛰다보면 이 길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하게 될 때도 있을 겁니다. 결승선 보다는 주위의 화려한 건물들이 보이고 세상의 성공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를 반드시 마쳐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이 있게 되는 겁니다.
서영 속담에 보면 “포기하기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속담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커다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개구리들이 통에서 열심히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통에 붙어서 기어올라 보기도 했고, 있는 힘을 다해 헤엄치다 뛰어올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가망이 없는 겁니다. 결국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는 포기해서 우유에 빠져 죽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으리 만큼 뛰고 또 뛰고, 있는 힘을 다해 수영해서 벽을 기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가 지났을까요? 이상하게도 우유가 점점 걸쭉해지더니 마침내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개구리가 워낙 우유를 휘젓다 보니까 우유가 버터처럼 굳어져 버린 겁니다. 결국 그 개구리는 살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생명에 대해서는 포기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인생의 고통이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지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이 단순합니다. 인생의 기차는 달리는데, 그 한정된 공간에서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개구리가 우유 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헤엄치고 점프하고 하는 모습이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매 주, 우리는 주일을 맞이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나옵니다. 그런데 때로는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늘 같은 예배를 드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 기차가 달릴 때는 설레임도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니까, 왠지 기차 안이 답답하고 지루해 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중도 하차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겁니다. 끝까지 종착역에 도착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보지 못하는 그 종착역, 하지만 반드시 인생이 출발 했으니 그 끝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인생, 기차 창 밖으로 소도 보이고 말도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끝까지 따라오라 하시는데 언제까지 “장사하러 가야 해요, 작별인사 하러 가야 해요, 소 먹이러 가야 하고, 밭 갈러 가야 해요” 하면서 핑계하고 변명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제대로 믿어보지 못하고 중도하차 하시겠느냐는 겁니다.
바라기는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핑계들, 끝까지 주님의 삶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변명들을 불태우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까지 그렇게 구원의 종착역까지 달라갈 수 있는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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