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소리 기록 생태학자가 곤충 소리를 기록하면서 귀뚜라미의 주파수를 연구하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었다. 주파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전파 신호와 같이 주기적인 파동이나 신호가 단위 시간 동안 몇 번 반복되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을 말한다.
필자는 동네를 지나다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다. 동네 어느 구간을 지날 때마다 특이한 일이 발생한다. 교차로를 운전하고 지날 때마다 자동차 라디오 주파수에 심한 잡음이 생긴다. 어느 때는 아예 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그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주변에 전파를 방해하는 어떤 요소가 있는지 궁금증만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라디오에서 AM 채널을 듣다 FM 채널로 돌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 없이 소리가 잘 들렸다. AM 채널은 주변의 다양한 소음으로 전파를 방해받아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FM 채널은 잡음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마주하며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이와 같은 원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여러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면 다양한 소음으로 그 채널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의 주파수에만 집중해야 한다. 채널 주파가 조금만 달라도 전파에 잡음이 생겨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정확한 주파수에 고정하는 게 관건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주파수를 마주한다. 그중에서 주파수가 일치하는 경우는 있지만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다. 동일한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능력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 남편의 언어와 아내의 언어가 다르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언어가 다르다. 서로의 주파수를 알고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아집을 부린다면 자녀들은 부모들과 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할 테다. 공동체 안에서도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만의 독해력으로 해석하고 유추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마다 밑줄 긋는 문장이 다르지 않은가. 같은 영화를 관람해도 감동 지점과 감상평이 각자 다르다.
서로의 언어만을 고집한다면 소통이 어렵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경청이 가능하다.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은 어떤 언어를 들어도 잘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다. 다양한 세대의 언어를 듣고 수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금만 집중하고 민감하게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면 소통이 원활할 수 있다. 서로를 향한 주파수를 잘 파악하고 맞추어 보자. 나의 주파수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지 타인과 공동체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내 주파수가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나 자신에게만 고정되어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동네 교차로 앞을 지날 때마다 발생하는 주파수 문제를 마주하며 많은 상념에 잠긴다. 우리가 세상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의 다양한 소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세상의 소리를 닫고 하나님께만 주파수를 세우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파수다. 세상의 다양한 소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AM과 FM 채널을 동시에 들을 수 없다. 세상 소음과 하나님의 음성을 동시에 들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주파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리라.
주파수를 세운다는 것은 민감한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정확한 주파수를 고정하는 게 관건이다. 세상의 다양한 소음에 묻혀 정작 집중해야 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인들은 분주함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역자이든 평신도이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최대의 적은 분주함이다. 다양하게 들려오는 소음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본질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어떨까. 잠잠히 은혜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주파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주파수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지 타인과 공동체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내 주파수가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방향을 점검할 일이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저마다의 주파수를 소유하고 있겠지만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 보자.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주파수에 집중해 보자.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나의 소리, 세상의 소리를 닫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앞에서 잠잠하길 갈망한다.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하나님의 주파수에 고정하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눈동자에 주파수를 고정한다면 십자가 밑에 우리를 내려놓고 은혜와 긍휼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나님의 주파수는 어디에 있을까. 잃어버린 영혼들과 열방에 아버지의 마음과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