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 초입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인장에 시선이 갔다. 온몸에 침을 꽂고 있는 선인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사느라 얼마나 고단할까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선인장의 모습이 아파 보였기에 몸 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가늠해 보았다. 선인장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 을 피우느라 고군분투하는 듯했다. 가시 너머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던 거였다. 햇살 이 선인장 꽃 위에 너울거렸다. 선인장을 마주하며 마음과 달리 공동체에서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필자는 그들의 삶 이면에 다른 모습이 있지 않을까 가늠해 보았다.
선인장 가시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선인장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잎을 작 게 만들어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고 넓은 잎 대신에 뾰족한 가시를 갖게 된 식물이 다. 식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가시를 달고 산다.
사람도 타인에게 상 처를 많이 받을수록 방어기제로 가시를 세우고 날카롭게 반응한다. 우리는 어떤 행 동 이면의 원인을 보지 못하고 가시적인 현상만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해 서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 안에 내재된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는 때가 있다. 우리는 때로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면만 보고 숨겨진 뜻을 간과하는 듯하다. 선인장은 자신의 몸을 벌레들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몸에 가시 를 품고도 튼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선인장을 보며 오래전에 남편과 함께 심방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새벽 예배를 드리고 심방 일정에 맞춰 권사님 댁에 방문했다. 그 권사님과 필자는 평소에 친밀한 교제를 하지 못하고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권사님은, 필자가 거실에 앉았을 때 손을 잡으며 따듯한 손난로를 주었다. 언젠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필자와 악수를 했는데 손이 차가워서 염려되었단다. 무심한 듯 스쳤던 짧은 순간에 세심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거였다. 사석에서 의 권사님 모습은 필자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달랐다.
권사님은 자녀들과 손주들의 가족사를 나누었다. 젊었을 때 남편을 잃고 외지에 서 홀로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단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마음과 달 리 표현 방식이 거친 것 같다는 거였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표정이 밝지 않아 어 떤 아픔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권사님의 지나온 여정을 들으며 이해가 되 었다. 권사님 이마에 새겨진 주름이 불빛에 반사되어 일렁였다. 권사님의 삶에 스친 그간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했다.
교회 강대상에 꽃꽂이하는 집사님이 있었다. 그 집사님도 아픔이 있어 다른 성도 들과 교제를 잘 하지 않고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마음과 달리 표현과 소통이 서툴러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집사님의 꽃꽂이는 볼 때 마다 감탄할 만큼 수준이 보통을 넘었다. 그 꽃꽂이는 매번 주제를 담아내었다. 집 사님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였다.
꽃꽂이 주제는 ‘균 형과 조화’인듯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꽃이 먼저 시선에 들어왔다. 주변의 꽃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색상의 명도와 채도, 꽃의 배치는 전체적 으로 조화를 잘 이루었다. 화려한 꽃들만 모두 주연으로 내세워진다면 그 꽃꽂이 작품은 실패한 거다.화려하고 아름답지만, 한발 물러서서 조연으로 세워지는 꽃들 이 있었기에 작가의 의도에 맞게 조화로운 꽃꽂이가 완성되었으리라. 주연과 조연의 역할이 바뀌었다면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꽃꽂이 작가의 의도 와 손길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꽃이 품고 있는 향기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때론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인처럼, 때론 청순한 소녀처럼, 때론 생기발랄한 아이들처럼 표현하는 꽃꽂이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삶의 무대에서 내가 주연 으로 세워질 때가 있고 때로는 조연으로 주연을 빛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있어야 할 위치를 잘 지킬 때 공동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집사님이 만든 하 나의 꽃꽂이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마주했다.
첫인상과 다르게 가 시 달린 선인장처럼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들도 종종 있다. 판단에 앞서 그 사람을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알게 되면 보이지 않았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우리는 종종 그 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표면만 보는 듯하다. 사람의 행동 이 면의 원인을 헤아리는 마음과 여유를 갖는다면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선인장 가시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들여다보 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이면에 어떤 아픔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게 필요하 다. 가시를 세우는 행동은 사실 마음이 아프다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가시를 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아프고 고단할지 생각한다면 긍휼의 마음을 품게 되리라. 내가 속한 소그룹이나 공동체에 선인장 가시 같은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먼저 손을 내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