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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월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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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목사] “고난, 아름다운 진주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우리가 잘 아는 보석 가운데 진주가 있습니다. 이 진주는 바다에 사는 조개 중에서 ‘아비큘리데’(aviculidae) 라고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조개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조개를 흔히 ‘굴조개’라고 그렇게 부르지요. 그런데 이 굴조개에서 값비싼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이 굴조개가 입을 벌린 사이에 우연히 모래알이 굴조개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굴조개 안으로 들어간 이 모래가 굴조개의 연한 살을 찌르게 되면서 굴조개가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이 굴조개는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스스로 ‘나카’라고 불리는 물질을 몸속에서 만들어 내 모래알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계속 ‘나카’라는 물질이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싸고, 그렇게 하면서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나 결국 그것이 ‘진주’가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굴조개 자신이 살려고 온 힘을 다해 고통과 싸우다 보니 결국은 그 고통의 결과가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굴조개 속에 들어온 모래알이 모두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모래가 몸속에 들어오면 굴조개는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연한 살을 찌르는 모래알의 고통과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래알의 고통을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를 선택할 경우에는 고통과 싸우기 위해 “나카”라는 물질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고의 결과는 자신이 살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두 번째를 선택할 경우는 모래알의 고통과 싸우기 위해 “나카”라는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서 수개월 또는 수년을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모래알의 고통은 무뎌집니다. 하지만 굴조개는 그 모래 때문에 병들게 되고,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요?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래알처럼 고통과 고난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느 날 이제 좀 숨을 쉴 수가 있어서 입을 벌렸는데, 뜻하지 않은 모래가 갑자기 입속으로 들어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원치 않았던 병이 찾아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합니다. 잘 되던 비즈니스의 매상이 이유도 모른 채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믿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이기 시작합니다. 화목했던 가정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물질의 시험을 당하고 또 인간관계로 아파합니다. 특히 이민자로 살면서 언어의 문제, 신분의 문제, 여러 가지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의 고통 속에 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성도들조차도 때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그런데 정말 내가 믿는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고통을 나에게 주시고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계실 수 있으세요?”라며 원망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고난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예상할 수 없는 고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고난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도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을 수 없다고, 그리고 반드시 고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믿으면 복받고, 잘 살고,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어떠한 고난이든 당하지 않고, 큰 병은커녕 감기도 걸리지 않고, 사업은 가만히 있어도 잘 되고, 아이들은 언제나 일등이고,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다른 것은 고통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붙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주님의 “십자가” 길을 가는 수고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결국 마지막은 ‘아름다운 진주’입니다. 생명이고 아름다운 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희생과 헌신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생명도 천국의 영광도 없는 겁니다. 그저 굴조개처럼 아무런 노력과 희생 없이 살다가는 결국 죽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셨고 결국은 구원과 아름다운 생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의 영광을 누리고, 천국의 축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에게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끝까지 지고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수고, 그 고난과 영광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구제를 위해서, 헌신과 봉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가능하면 직접 참여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어느 곳이든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이도록 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고난일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도 고난이고, 물질에 대해 헌금을 내는 것도 고난이고, 싫은 사람들과 예배하는 것도 고난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난이 없을 수 없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진주를 만들어 낼 것인가 아니면 멸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 헌신과 희생의 고난을 우리가 감당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겁니다. 그래야 그 감당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아름답고 멋진 열매를 맺어가는 영광이 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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